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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엄마, 여자친구, 까뮈의 <이방인>과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
    기묘한 이야기 2021. 8. 4. 20:46

     

     

    1. 작년 초쯤이었나.

    그러니까 우리나라엔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 부모님 집에 들어와 살 때의 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출시 때문에 매일같이 새벽 3-4시에 퇴근을 이어가던 어느날 아침,

    엄마가 내 등뒤에다 대고 반드시 마스크를 하고 가야한다고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때만 해도 마스크를 하는 사람조차 드물었고, 마스크 의무화 같은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기였다.)

     

    너무 신경질이 나서 나도 기억나지도 않을 말로 쏘아붙이고 집에서 나왔다.

    '기저질환 있는 사람이나 위험한건데 왜 이리 극성인지' 궁시렁거리며 가고 있었는데,

    운전을 하며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는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었다.

     

     

    2. 그보다 몇 년 전, 조카의 돌잔치날이었다.

    (어째서인지 이때도) 매일같이 날밤을 까고 있던 터라, 눈을 뜨니 이미 늦어버린 시간이었다.

    심지어 새 셔츠가 없어서 전날 입었던 약간 구겨진 셔츠를 입고 가서 누나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어쨌든 양가 가족이 모여 돌 사진을 찍고 식사를 시작하던 중에, 

    엄마는 '이 곳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춥고 어지럽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이상한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몇 분 안있어 엄마는 말을 제대로 못했고, 곧이어 조금씩 인지능력과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놀랍게도 그 식사 자리에 의사만 세 명이 있었다.

    심지어 누나는 신경과 전문의였으므로, 이것이 급성 뇌출혈 증세임을 알아차리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아마 이 세상의 어떤 뇌출혈 환자보다도 빠르게 응급조치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서도) 뇌출혈은 무서운 질환이었다. 수술을 하기는 이미 늦었고, 기적적으로 병세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앞으로 이전과 같이 말씀을 하기는 어려울거라는 소견을 받았다. 엄마를 닮은 누나는 내내 울었지만, 어차피 중환자실에 모든 가족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가 같이 있는다해도 달라질 것이 없으니 모두 집으로 돌아가달라고 했다.

     

    그 날 조카의 돌잔치가 끝난 이후 당시 여자친구랑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전화로 전후상황을 설명했고, 여자친구는 (어쩌면 나보다 더) 놀랐지만, 약속을 미루거나 바꾸진 않았다.

    그렇게 만난 여자친구에게 다시 한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 그래서 이제 엄마가 말을 못한다고 하네."

    하고 이야기를 마치는데, 그 친구가 다소 이상한 코멘트를 달았다. (그래서 더 뇌리에 박힌듯)

    "오빠. 오빠가 아직 실감이 안나나 보네."

    나는 대답했다.

    "응. 나 아직 실감이 안나."

     

     

    3. 여자친구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이 대화가 이상했다고 생각했다.

     

    보통 '실감이 안나다'는 감정 표현을 타자에게 적용하진 않는다.

    사람들은 상대방 또는 제 3자의 감정에 공감할때 "그래서 당신이 슬펐군요, 기뻤군요, 서운했군요. 무서웠군요" 등등의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현은 분명히 자신이 주어일때 더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즉, 여자친구는 내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슬프다고 표현하지 않았고, 다소 벙쪄있지만 감정의 오르내림 없이 사실관계 위주로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자기 세계관 안에서 해석하여 코멘트를 단 셈이었다.

     

    이 다음이 더 이상한데.. '나 아직 실감이 안나'라고 말한 것은 사실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난 엄마가 굉장히 위험한 질환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고,

    그 결과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한순간에 상실했음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도 구체화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엄마가 토요일 아침 자취방에서 자고있는 날더러 집에 오라고 전화를 하지 못하게 되었구나.

    - 엄마가 자주하는 부동산 투자 이야기도 못하고, 주중에 큰 조카를 봐주지 못하겠구나.

    -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이렇게 병원에서만 겨우 만날수도 있겠구나.

    - 병원에서 만나더라도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듣기가 엄청 어렵겠지.

    - 우리 누나는 (앰뷸런스에서부터 그랬듯) 당분간 내내 울겠네.

     

    그럼 너는 엄마가 그렇게 아픈데 슬프지 않았던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슬펐다. (아님 슬프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것이 같은 말인지 다른 말인지도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갑자기 엄청 불행한 일이 일어나버렸고, 내 삶에도 분명히 좋지 못한 큰 변화들이 일어날 것임이 느껴졌다.

    다만 눈물이 나거나, 눈물이 날것 같은 느낌을 받진 못했다.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되는 '자리에 풀썩'? 그 느낌도 아니었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누군가 돌아가셨을때도 눈물이 안나면 어떡하나.'

     

     

    4. 돌고돌아서 얼마 전 우연찮게 이 이야기를 나눈 어떤 이가 까뮈의 <이방인>을 권했다.

     

    주인공 뫼르소는 우연찮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어째서인지 재판의 논점은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으로 흘러간다. (이 설정에서 굉장한 감정이입ㅋㅋ)

    초월적으로 솔직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형대였다.

    하지만 그의 세계관 안에서는 이 부당한 폭력에 맞서야할 이유도 없고, 그럴만한 의지도 없다.

    다만 회개하라는 신부의 위선을 꾸짖는데 뭐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또 '깔끔한 GG'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로 피곤한 양반이구만!' 하면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는 이야기지만, 뒤에 붙은 작품 해설은 그렇지 않다.

     

    작품의 상징성을 설명하면서 진실에 대한 추구와 위선에 대한 배격과 저항을 같은 개념마냥 묶어가는 것,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듯한 알 수 없을 선민의식에서 왠지모를 지독함을 느낀다.

     

    위선? 인정. 우리는 위선자다. 그 부산물인 폭력과 불행들이 있지만 이것 또한 이 게임의 일부이며, (스스로 인지하든 아니든) 이 점을 십분 이해하며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진실? 진실은 무엇인가. 위선의 반대가 진실인가? 아니. 어떤 이는 예심판사로, 또 누군가는 신부로, 또 누군가는 뫼르소, 셀레스트, 배심원, 아랍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진실의 범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저항? 뭐 하고싶은 사람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다만 그것이 진실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미안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시말해 위선자를 꾸짖는다면 그것 또한 '각자의 사는 법이 있다'는 진실을 반대 방향으로 절반만 이해한 것이 아닌가.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짐캐리 형님은 우리를 꾸짖을 생각은 없어보인다.

     

    아, 엄마의 이야기는 앞으로 쭉 하지 않는게 좋겠다. 방식이 어떻든 간에 사형당할 위험이 있는 것이니.

    우리 모두 어차피 사형수 아니냐고? 난 죽음이 두려운진 잘 모르겠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조금 두렵다. 확실하게.

     

    주인공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예수'라고 평한게 작가 당사자구나.

    '예수'라니! 아이러니하다.ㅋㅋ 그 분이야말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생각해보니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가 바로 그것.

    주인공 신이치는 본의 아니게 외계생물과 융합되면서 인간적 감정이 옅어지고, 눈물이 나지 않게 된다.

    급기야 여자친구는 떠나가고(ㅋㅋ) 친구의 장례식에서도 덤덤한 모습을 보여버리고 만다.

    이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위화감을 뿜뿜하고 다니다보니 점점 스스로도 뭐가뭔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어가는데...

     

    사실 이건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설정은 아니다.

    이후 일어나는 사건, '반대로 인간의 감정을 조금 깨달아 버린 외계생물의 죽음'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 역할인 셈으로,

    이 사건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다시금 눈물을 흘리게 된다.

    (구글로 좀 찾아보니 주인공이 여자친구를 바라보며 '눈물이 돌아왔어'라고 말하며 챕터가 마무리되는듯.)

     

    이 작품을 당시에는 이 걸작에서 다소 아쉬운 설정 내지는 장면으로 생각했다.

    이 설정을 꼭꼭 심기위해 작가는 앞단에 많은 사건을 배치해야 했기 때문.

    근데 지금 돌아보니 '눈물이 돌아왔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일종의 안도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ㅋㅋ

    사실 눈물을 되찾기 전과 후에 주인공이 서술로 미루어 보았을때 인물의 실제 감정선 변화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이 이야기도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었네.

     

     

    6. 여담을 남기자면, (맨 앞의 코로나 이야기에서 묘사되었듯) 엄마는 기적적인 수준으로 회복했다.

    얼마전에는 나라에서 준 백신도 잘~ 맞으셨다.

     


    * 썸네일 : <기생수> 7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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