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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 두살에 꾸는 군대 꿈
    기묘한 이야기 2021. 7. 18. 21:45
    <North Carolina Journeys - Truck>, Marina McLain 

    원체 꿈을 꾸지 않는 편이라, 한번 꾸면 오랫동안 기억을 하는 편이다.


    꿈 속의 나는 머리를 박박 깎고 입대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어쩐 일인지 다섯 가족 모두가 아빠의 오래된 K5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았다.

    그런데 날씨도 화창하고, 수도권을 벗어나 좋은 공기 마시며 푸른 산들 사이를 달리고 있자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난 10년도 더 전에 군대를 갔다온게 아닌가..!

    하지만 지금 일어 나고 있는 일이 정상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속으로 한참을 생각했는데,

    군대를 원래 한번 가는건가 두번 가는건가 하는 부분에서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눈치를 슬쩍 본 후, 누구에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말을 거는것도 아닌 요상한 방식으로 말을 흘렸다.

    '10년전에 갔다 왔는데 또 가네..ㅎ'

    아니나 다를까 차 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처음엔 우선 가족들 중 누구도 내가 이미 군대에 다녀왔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해서 구체적인 사실을 설명해야 했다.

    2010년도에 그때는 이렇게 다같이 가지 않았고, 아빠가 전주에 데려다 주지 않았느냐.

    휴가를 6개월동안 안썼는데 마침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휴가를 짤리지 않았었느냐.

    하나하나 들어 설명하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다음 논점은 '너의 말대로 군대를 이미 다녀왔다면 왜 또 가야하는가'였는데,

    이건 나도 몰랐으므로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갈수록 가족들의 질문은 '왜 이걸 이제야 말하는가'등 당면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엄마한테 등짝맞고 (넌 정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어이구 내가 못살아.)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아니 엄마도 몰랐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는겨...라는 말을 입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국방부 민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입대하기로 한 사람인데요. 제가.. 생각해보니까 10년전에 군대를 갔다왔어요.'

    전화 건너편의 누군가는 이에 대해 별 다른 반응은 하지 않고, 무심하게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물었다.

    '아.. 네.. 제 주민번호가..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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