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탈락의 추억
    기묘한 이야기 2021. 2. 6. 21:47

    S사 인적성 문제 예시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이전에 누군가 취업 준비하고 있는 꼬맹이 후배한테 취업 조언같은 걸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딱히 거절하기 뭐한 입장이라 가볍게 밥이나 얻어먹자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그 시기의 취준생이 누구나 그렇듯 그 친구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아 몹시 딱했다.

     

    다녀와서 이런 종류의 부탁은 다신 받지 않기로 했다.

    왜냐! 보통 이런건 전-혀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 날 술먹으며 기억을 되살렸던 몇가지 짧은 이야기들.

     


    K사 (법인 영업 / 1차 면접 탈락)

     

    본사가 광화문에 위치한 이 회사의 가장 괴이한 점은 신입사원 면접을 일요일에 본다는 사실이다.
    (지원자야 그렇다 치고, 면접관 양반들은 무슨 죄냐 이 말임.)

    딱히 관심도 없던 이 회사에서의 면접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이 질문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나 수호지에서 좋아하는 인물을 고르고 그 이유를 본인과 연관시켜 말해보세요."

     

    잠시 '이런건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오나' 생각하던 박씨는, 앞 사람이 대답하는동안 귀를 완전히 닫고,
    10년에 한번 정도 나올 기지를 발휘해 사자성어 '괄목상대'의 주인공, 오나라 장수 여몽을 생각해냈다.

     

    대답의 요지는 대충..

    • 기본적으로 삼국지는 소위 '재능 금수저'만 나오는 이야기인데, 그 중 여몽만이 다른 케이스라 생각함.
    • 성분 100% 무관인 그는 이미 유능한 장수로 인정받는 위치에 올랐으나, 타인의 피드백을 받고 굉장히 힘들게 노력(그렇다. 노오력!)해서 학문을 쌓았음.
    • 무시하던 노숙이 여몽의 성장한 모습에 깜짝 놀라자 '사람이 사흘 지났으면 눈 비비고 다시 봐야한다'며 일갈을 날려준 것은 다들 아실 것임. 
    • 백미인 부분은 삼국지의 끝판왕 격인 '관우'를 잡은 것은 모두가 아는 걸출한 인물이 아니라 여몽이라는 점.
      '삼국지 재능 금수저판 이론'의 관점에서는 정의구현이라고 볼 수 있음.
    • 난 스스로를 어떤 한 분야에 전문성이 있거나 특출난 두드러지는 강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 이건 대졸 신입 공채니 당연한 소리)
    • 욕심이 많아서 '남들보다 시간을 많이 투입해서 결과물을 뽑아낸다.'는 측면에서 나랑 좀 맞는 측면이 있는것 같다.
      (=> 이건 굉장히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동시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대답임.)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씨는 나름 대답을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근데 한참 이야기를 들었던 면접관은 '근데 여몽이 누구지?'하는 눈치였다.


    C그룹 엔터 계열사 (영화투자 / 1차 면접 탈락)

     

    한때 '내가 IT업에서 일할 수 없다면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C그룹만큼은 엔터 계열사를 지원했는데, 어째서인지 이 회사가 가장 먼저 불러주었다.

     

    다소 걱정했던 개인 면접은 생각보다 기분좋게 끝났다.

    당시 투자1팀장님이 들어오셨는데, 일단 멋진 분이셨고 여러가지 즐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업과 시장에 대한 View. (Until Now & What comes Next?)
    이 회사가 최근에 런칭시킨 필름들에 대한 생각
    이후에 같이 일해보고 싶은 (잘 될 것 같은) 감독 (아마도 KAFA 졸작으로 대박친 Y감독을 Pick한 것으로 기억)
    Netflix를 비롯한 OTT 비즈니스 트렌드


    문제는 조별 면접에서 터지고 만다.

    평소 여러 산업현장에서 알바로 뛰어본 경험 + 고용인이 되어본 경험 덕이었을까,
    면접스터디에서 '이 중에 제일 회사원 같네요' 같은 피드백을 받아왔어서 유독 자신이 있던 편이었다.

     

    근데 이날의 과제는..

    지문1 : OSMU (One Source Multi Use) 사례
    지문2 : 예능 포맷 수출 사례 (정확하지 않음.)
    과제 : (대충 장사 잘 될것 같은) TV 프로그램을 기획해보세요.

    그렇다. 지금 따지고 보면 이렇다 할 것 없는 평범한 과제였다.

     

    문제는 TV를 멀리하는 가정 환경으로 인해, 박씨가 군대 2년을 제외하고는 TV를 제대로 본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고로 박씨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2명의 면접관과 5명의 팀원 앞에서 방청객 모드로 '아~ (그런 TV프로그램도 있었군요! /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 오 그거 TV쇼로도 나왔어요? 등)' 하는 리액션을 반복적으로 발사해줄 뿐이었다.


    L그룹 IT계열사 (서비스 기획 / 골고루 탈락)

     

    이 회사는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에 비해 세간의 평판이 몹시 안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시 이 회사를 좋게 본 것은, 탈락자를 포함한 모든 지원자에게 피드백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마케팅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인적성 시험과 두 차례의 면접을 점수화 시킨 후, 합격자 평균 / 지원자 평균 / 내 성적을 나누어 알려주는데,

    알고보니 난 모든 부문에서 골고루 모자란 사람이었다 ㅎㅎ
    가장 속 시원한 탈락이었다고 할 수 있다.


    H그룹 IT계열사 (신사업 기획 / 면접 탈락)

     

    이 회사의 당시 대표이사님이 대졸 신입 공채에 대한 어떤 철학이 있으셨던 것 같았다.

    사실 다른 스텝은 크게 상관이 없고, 대표이사 + 임원진 대여섯 명이 들어오는 면접이 당락을 가른다.

    게다가 취준생 커뮤니티에 이 면접의 문제가 이미 오픈되어 있다.

    "당신이 가장 잘 하는것을 알려주고, 어떻게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지 설명해보라."

     

    지원자도 대여섯명이 동시에 보는데, 내가 제일 먼저 손들고 말했다.

    말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데 (K사 여몽썰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 아마 면접 중에서 가장 잘 본 면접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 굉장히 호의적인 느낌의 Follow-up Question이 이어졌고, 능글맞게 잘 받았다.
    • 내 차례가 끝나고 나머지 지원자들이 쉽사리 손들고 나서서 대답하지 못해 정적이 이어졌다.

    결과는 대차게 탈락!

     

    나중에 내가 면접관이 되고 나서 깨달은 사실인데, Follow-up Question이 이어지는 것은 그닥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이것은 지원자가 Gray Zone에 있을 때 나오는 패턴이다.

    뭔가 애매하니까 이것 저것 더 찔러서 짜내보는 것이다.


    외국계 IT기업 I사 (Business Analytst / 영어 면접 탈락)

     

    영어 인터뷰를 외부의 학원에 외주를 준다.

    지정된 학원에 가면 원어민 선생님과 다소 시시한 대화를 나눈다. 

    오늘 오는 길 괜찮았어?
    학교 다니면서 재밌게 공부한건 뭐있어? => 의사결정론 이야기 한듯.
    과외 활동같은 건? => 동아리 했어.
    너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해?
    영어는 언제 많이 배운거야? => 여행 조금. 그거보다 헐리웃 필름으로 많이 배운것 같아. 난 내가 좋아하는 영화 또 보는거 좋아하거든.

    인도여행과 헐리웃 무비로 쌓은 소위 '실전 전투 영어'에 기반한 교만함에 가득차 있던 박씨는 시시한 대화와 함께 그대로 골로 가고 말았다.

     

    한국 IT 업계는 좁다.

    그래서 면접을 다니다 보면, 다른 면접장에서 본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많고, 주로 타사 전형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공유하곤 한다.

    당연히 이 회사 면접 결과에 대한 이야기도 수십차례 나눈것 같은데, 아직까지 지구에서는 영어 인터뷰 스텝에서 탈락한 이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외국계 IT기업 O사 (IT Consultant / 1차 면접 탈락)

     

    A4 용지를 한장 쥐어준다.
    거기엔 두 문장이 적혀있다.

    IT is all about business.
    B. It is all about business.

    두 문장 중 더 마음에 드는 것을 Pick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대답도 기억나지 않거니와 이 문제의 출제 의도는 수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S사 IT 계열사 (개발 / 인적성 탈락)

     

    취준생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일단 한번씩은 쓰는, 한국에서 가장 큰 회사.

    이 회사의 인적성 시험이 대졸 공채 시즌의 시작을 알린다. 

    박씨는 이 회사의 인적성 시험을 한번도 통과를 해본적이 없다.

    이걸로 주변인이 한 2년 정도 놀린 것 같다.


    E사 IT 계열사 (기획? / 인적성 탈락)

     

    일산 킨텍스의 가장 큰 홀에 전국에서 온 모든 지원자들을 가둬놓고 시험을 본다.

     

    이 시험을 잘 보는 법은 뒤쪽 출구, 정확히는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치받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왜냐면 쉬는시간에 화장실이 아수라장이 되어 자칫하면 천년만년 줄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창업주의 책을 나눠주었다. (나름 팔리는 책이었는데 아직도 안 읽음.)

     


    또 다른 S사 IT 계열사 (? / 인적성 탈락)

    내가 본 인적성 시험 중 가장 어려웠다.


    또 다른 L사 IT 계열사(? / 인적성 탈락)


    이 곳은 놀랍게도 인적성 시험에 한문이 나온다.


    C사 IT 계열사 (사업 기획 / 합격)

     

    1차 면접을 당시 해당 본부의 연구소 파트장님께서 보셨다.

    연수 등등 꽤 시간이 지나고 현업 배치를 받고나서 여기 저기 인사를 드리는데 이 분은 왠지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그는 당시의 심경을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한 명 뽑는 포지션이었는데 난 정말 당신이 될 줄 몰랐어ㅋㅋ"

     

    가장 유용한 교훈 : 당신이 면접관이고 누군가를 탈락시키고 싶다면, 회생 불가할 정도의 점수를 주어야 한다.

    '기묘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른 두살에 꾸는 군대 꿈  (0) 2021.07.18
    박씨의 얀센 백신 접종 전후 행적  (0) 2021.07.18
    작은 호의를 베푸는 습관  (0) 2020.10.04
    둘이서 주루마블  (0) 2020.08.16
    시그니엘에서 술 먹기  (0) 2020.06.22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