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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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엄마, 여자친구, 까뮈의 <이방인>과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기묘한 이야기 2021. 8. 4. 20:46
1. 작년 초쯤이었나. 그러니까 우리나라엔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 부모님 집에 들어와 살 때의 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출시 때문에 매일같이 새벽 3-4시에 퇴근을 이어가던 어느날 아침, 엄마가 내 등뒤에다 대고 반드시 마스크를 하고 가야한다고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때만 해도 마스크를 하는 사람조차 드물었고, 마스크 의무화 같은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기였다.) 너무 신경질이 나서 나도 기억나지도 않을 말로 쏘아붙이고 집에서 나왔다. '기저질환 있는 사람이나 위험한건데 왜 이리 극성인지' 궁시렁거리며 가고 있었는데, 운전을 하며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는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었다. 2. 그보다 몇 년 전, 조카의 돌잔치날이었다. (어째서인지 이때도) 매일같이 날밤을 까고 있던 터라,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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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두살에 꾸는 군대 꿈기묘한 이야기 2021. 7. 18. 21:45
원체 꿈을 꾸지 않는 편이라, 한번 꾸면 오랫동안 기억을 하는 편이다. 꿈 속의 나는 머리를 박박 깎고 입대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어쩐 일인지 다섯 가족 모두가 아빠의 오래된 K5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았다. 그런데 날씨도 화창하고, 수도권을 벗어나 좋은 공기 마시며 푸른 산들 사이를 달리고 있자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난 10년도 더 전에 군대를 갔다온게 아닌가..! 하지만 지금 일어 나고 있는 일이 정상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속으로 한참을 생각했는데, 군대를 원래 한번 가는건가 두번 가는건가 하는 부분에서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눈치를 슬쩍 본 후, 누구에 물어보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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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얀센 백신 접종 전후 행적기묘한 이야기 2021. 7. 18. 17:54
~ 14:00 : 퇴근후 농땡이 ~ 14:50 : 병원 이동 - 유튜브로 F1 아제르바이잔 그랑프리 중계 실황 보며 병원 이동 (내가 이걸 왜 보고있지?) ~ 15:20 : 병원 대기석 -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TV조선 뉴스 시청. TV조선은 장사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리스펙 - 2016년 창가에 놓인 2016년 독감 예방주사 판촉물 발견 (몰래 없애드릴까..) ~ 15:30 : 접종 - 간단한 예진을 한다. (술이나 담배하시나요? 둘 다 하는데요...) - 최근 백신 오접종 내지는 소위 '물백신'에 대한 뉴스를 의식한 것인지, 의사 선생님은 내 앞에서 약병을 개봉했다. - 얼마만에 팔에 맞는 주사인지 모르겠지만, 아프지 않았다. ~ 16:00 : 식자재마트 - 돌아오는 길에 보양식을 찾아 식자재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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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의 추억기묘한 이야기 2021. 2. 6. 21:47
이전에 누군가 취업 준비하고 있는 꼬맹이 후배한테 취업 조언같은 걸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딱히 거절하기 뭐한 입장이라 가볍게 밥이나 얻어먹자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그 시기의 취준생이 누구나 그렇듯 그 친구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아 몹시 딱했다. 다녀와서 이런 종류의 부탁은 다신 받지 않기로 했다. 왜냐! 보통 이런건 전-혀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 날 술먹으며 기억을 되살렸던 몇가지 짧은 이야기들. K사 (법인 영업 / 1차 면접 탈락) 본사가 광화문에 위치한 이 회사의 가장 괴이한 점은 신입사원 면접을 일요일에 본다는 사실이다. (지원자야 그렇다 치고, 면접관 양반들은 무슨 죄냐 이 말임.) 딱히 관심도 없던 이 회사에서의 면접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이 질문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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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의를 베푸는 습관기묘한 이야기 2020. 10. 4. 22:46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개인적인 습관들. 1. 돈을 달라는 노숙자에겐 반응하지 않지만, 담배를 줄 수 있는지 묻는 노숙자를 만나면 내 것 두세 까치를 빼고 갑 통째로 드린다. 2. 대리기사님을 불렀을땐 1+1으로 파는 캔음료를 사둔다. 컵홀더에서 헷갈리지 않도록 나는 손에 들고 마신다. 운전석에 앉으시면 좌석 위치와 룸미러, 사이드미러를 맞게 조정하시라 먼저 권한다. 3. 식당에서 도통 들어보지 못한 소주 프로모션을 하는 언니들을 만나면 설명은 듣지 않고 곧바로 한두병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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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엘에서 술 먹기기묘한 이야기 2020. 6. 22. 23:09
내 팔자에는 없는 곳.운좋게도 투자자로부터 팀 전체가 프라이빗 룸에 초대를 받아 한자리 낄 수 있었다.사실 나는 서비스 시연 외에는 딱히 말할 껀덕지도 없고 해서 와인을 퍼부어댔다. 치즈 플레이트는 그냥 치즈 플레이트 맛이었음. 술집에서 파는 치즈 플레이트가 그렇듯 스모크치즈가 가장 맛있다. 찹스테이크 샐러드는 맛있었다. 과연 남다른 퀄리티의 고기. 투자사쪽 참석자 중에는 홍콩사람도 있었는데, 와인을 한참 퍼붓더니 꾸깃한 주섬주섬 글렌리벳을 꺼내들며 '와인 마시고 나면 이거 먹자!' 하고 신나했다. (당연히 이곳은 외부 주류 반입 금지다.) 속으로 '돈이 저렇게 많은 애들도 똑같구나' 하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뭔가 아쉽다면 테이블 홀쪽에 있는 흡연실을 찾아보시라. 약간의 담배 쩐내는 피할 수 없지만 뷰가..